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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물질

écrivain inconnu 2021. 5. 27. 22:53

210527. 흐림, 비.

되도록 많이 쓰고 물질과 비물질을 모두 버린다,라고 얼마 전에 썼다. 그러나 나는 커머스 업계에서 일하므로 상품을 버릴 수 없다. 상품은 내가 안고 가야 할 내게서 태어난 생명줄과 같고, 매출은 내가 지고 가야 할 등짐과 같다. 나는 늘 매출 데이터를 보며 판매 중인 상품과 판매 중이지 않은 상품, 팔리는 상품과 팔리지 않는 상품을 가르고, 그것이 어떻게 하면 다시 팔리는 상품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모든 순간이 매출 기여도에 달려 있고 모든 평가는 KPI 달성 정도에 기대어 있다. 내 모든 순간이 물질과 얽혀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몇 줄기 내리지 않는 비 때문에 우산을 폈고, 우산 속에서 나는 안온함을 느꼈다. 빗방울 몇 가닥을 피했다는 안도감, 삭아버린 우산도 때로는 쓸모 있다는 기꺼움이 출근길에는 있었다. 우산이 있어서 나는 대개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니는 듯 불편했지만 아주 가끔은 오늘처럼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게임, 프로그래밍, 회사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단지 할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피로해 보였지만 밝았고, 생기가 그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아직 깨지 못한 정신으로, 투미한 눈으로 그를 보며 고개만 주억거렸다. 오늘부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는 그에게 달리해줄 말이 없는 어른이었기 때문에, 해줄 말이 있어도 그것은 눈에 띄지 않는 마음 한 가닥일 뿐이었으므로 나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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